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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元州)원씨 3계파의 역사적인 통합을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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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김제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5-28 11:15 조회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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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주원씨는 전국적으로 130,000여명 (성씨중 15위: 2015년 통계)이며 원주를 본관(本貫)으로 하나 운곡, 원성백, 시중공계 등 3계파가 모시는 시조가 달라 하나의 시조를 모시는 한집안으로 주장하는데 늘 큰 장벽이 있어왔다. 뜻있는 선조들께서 수백년동안 통합을 위해 끈질긴 노력을 해왔으나 소송전까지 가는등 계파간 이견이 많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숙원과제였다.

2) 역사적인 통합 완성
◎ 2025년 5월27일 3계 통합위원회의 만장일치로 결의
- 중국 위(徫)나라 재상이셨던 원훤(元咺 BC628년)을 시조로 정하고 지금까지 모 셨던 시조(3분)을 중(中)시조로 합의함
- 합의한 결의를 파괴하는 사태를 막기위해 법적 효력있는 공증을 받음
◎ 3계 종친회의 통합종친회 결정
- 원주원씨 중앙대종회
- 중앙대종회 위치 : 서울 여의도 시중공계 중앙종친회 사무실
- 3계 항렬 통일
- 원훤시조단 위치 결정 (원주시 봉산동 시중공계 시조설단 옆 동산)

3) 통합 완성 과정과 역사적 의미
◎ 3계파중 시중공계가 중심이 되어 통합과제를 계속 다뤄왔고 83년경 3계파의 사
회적 리더가 통합에 합의하고 통합 족보 발행 직전에 이르렀으나 일부 반대로
무산된적 있음
◎ 원대연 회장의 끈질긴 집념이 만든 통합
- 80년대 30대로 이와같은 통합무산과정과 당시 시중공계 중앙종친회 부회장이자
종사위원장이셨던 숙부(원종훈 : 전 중앙일보, 동방생명 사장)의 투철한 숭조정신
과 열정, 그리고 좌절을 지근에서 보아오며 문제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절실히 인식하는 계기
- 98년 3계파 사회 저명인사의 모임인 “으뜸회” 회장을 맡아 “통합과 수치의 역사
인 원균장균 명예회복“을 반드시 해결해 보자는 각오로 지속적인 공감대를 구축
해 왔으며 2007년부터 시중공계 중앙종친회에 관여하게 되고 2013년 시중공계
중앙종친회장을 지금까지 (13년) 역임하며 지속적으로 통합을위한 집요한 노력을
기울여 왔음.
그러던중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장 큰 통합의 걸림돌이었던 원성백 계의 원상필사장이 나의 노력에 공감하고 가장 영향력이 큰 종친회장등을 설득하 고 소장파 모임을 결성, 분위기를 띄우므로서 본격적인 통합의 계기를 촉진하게 됨.
20년이 넘는 오랜 염원을 집념과 열정이 이루어 낸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어느집안이나 종친회는 비슷한 문제들이 있고 뜻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 힘들어 거의 불가능 하다는게 정설로 알려져 있는데 이렇게 이룬것은 끈질긴 노력과 함께한 행운이 뒷받침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 『통합에 이르기까지의 숨은 이야기』에서 지난한 오랜 애정을 소상히 소개하였습니다.

 

통합의 경과 : 삼계(三系) 통합보(統合譜) 수권(首卷) 서문에 덧붙여

                                  — 통합에 이르기까지의 숨은 이야기 —

원대연(시중공계 중앙종친회장)

  1. 글을 시작하며 : 숙원과제 3계 통합, 드디어 역사적 합의
  • 2024. 5. 27(월) 원성백계 대종회 회의실(천안)
  • 시조를 달리 모셔 온 3 계파(原成伯系, 侍中公系, 耘谷系), 원훤(元喧) 선조를 시조(始祖)로 모시기로 합의하고 결의문을 작성하다.
  • 후대(後代)를 위한 큰 걸음으로 나아가, “한 자손”임을 대승적(大乘的)으로 수용하다.
  • 오래전부터 선대들께서 통합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결코 그렇게 쉬운 과제가 아니

었을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3계파가 원만하게 한 뜻이 되지 못하면 결코 이룰 수 없는 미묘하고 지난한 사안인지라 직접 참여치 못한 종친가족과 후손들을 위해 그 동안의 복잡하고 미묘

했던 우여곡절의 과정을 소상히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자 한다.

  1. 통합을 향한 지난 시기의 노정(路程)
  • 지난 반세기 동안 시중공계 중앙종친회가 통합을 위한 중간 조정자 역할을 줄곧 해왔다. 1983년 3계 통합족보위원회의 통합족보(甲子譜) 발간이 인쇄 직전에 소송 제기의 움직임에 중단되었고, 2013년에도 시중공 중앙종친회(회장 元喆喜)에서 오랫동안 종사 문제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셨던 원종훈(元鍾勳) 종사연구위원회 위원장과 원종섭(元鍾燮) 사무총장 두 분께서 열성을 다하였으나 역시 무산되었다.
  • 그 이후 실무 책임자들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며 원종갑(元鍾甲) 사무총장으로 하여금 계파 사무총장 중심으로 분위기를 조성토록 했지만 역시 뜻과 같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원대연 회장(전 삼성물산, 제일모직 사장)은 으뜸회 회장(1998년~ )과 시중공계 중앙총친회장(2013년~ )직을 맡으며 3계 통합과 원균 장군 명예회복이란 두 과제를 원씨 가문의 명예를 위해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뜻을 세워 지난 20여 년간 끊임없는 물밑 작업을 해왔다.
  • 원 회장은 장충동 자택에서 종친회 사무실을 꾸려 운영할 정도의 열의를 지니신 숙부님(元鍾勳, 전 중앙일보, 동방생명 사장)을 가까이에서 1980년대 30대 중반 무렵을 보냈는데, 그의 숙부(元鍾勳)께서 원용석(元容奭, 전 농림부장관, 국회의원) 시중공계 중앙종친회장을 중심으로 당시 사회 유력 인사들로 구성된 3계 대표분들과 함께 통합을 위해 열성을 다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원씨 통합에 대한 문제의식을 절감하게 되었다.
  • 이 기회를 빌어 이와 같은 정신을 저에게 이어주신 원종훈 숙부님의 각별하셨던 종친회를 향한 열정과 숭조정신에 대해 소개 한다.

오래 전부터 시중공계 중앙종친회 부회장과 종사위원장을 맡아 중추적인 역할을 해오시던 중 1967년 열악한 장충동 종친회 사무실을 자택 차고를 개조하여 이전, 작고하실 때까지 20여 년간을 운영하실 정도로 남다른 열정으로 헌신하셨고 종친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원용석 장관님을 회장으로 모셨다. 또한 자신이 당시 중앙일보사의 전무, 사장,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사장을 역임하는 동안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배경으로 종친회의 중흥에 크게 이바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3계 유력인사들을 참여시켜 선대 숙원 과제인 통합작업을 추친하였음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또한 그분은 합천세무서(20대), 경남도청(30대) 근무 시 서울 출장기회 때 바쁜 공무일정에도 원주, 여주 선영과 종친어른들을 찾아 뵐 정도로 남다른 숭조정신을 가지셨다.

더불어 숭조정신과 치욕적인 범 원문(凡 元門)의 자존감을 살리기 위해 원용석 시중공계 중앙종친회장의 정치적 배경에 힘입어 3계종친회와 합심으로 정부의 지원을 끌어내 상대적으로 초라했던 임진왜란 선무 1등 공신이셨던 원균장군의 묘역사업을 대대적으로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게 하였다.

  • 원대연회장은 원경(元鏡)을 시조로 일치를 본 운곡과 시중공계와는 달리 벽산 공신 원극유(元克猷)를 시조로 하는 원성백계가 원경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므로 통합이 번번이 무산된 것을 들어 왔기에 1998년 3계파 통합 친목 모임인 으뜸회(元喆喜 전 농협회장, 원혜영, 원광호 전 국회의원 등이 창립) 회장을 맡으면서 어느 국가, 가문이든 시조가 하나임은 분명하니 미래지향적으로 크게 생각을 모아야함을 설득하고 분위기를 만드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특히 으뜸회 창립 멤버이신 원철희 회장께서도 으뜸회와 종친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시고 늘 격려해 주심에 큰 힘이 되었으며 함께 노력해주신 으뜸회 멤버들과 원성백계 원유광 종친께도 감사를 드린다.
  1. “뜻이 있는곳에 길이 있다.”

가. 20여 년간 공회전만 거듭해 왔으나 시중공계 중앙종친회는 통합과제를 중단 없이 다뤄 왔다. 원 회장의 일관된 집념과 이를 보필하는 원종갑 사무총장, 원대연 종사연구위원회 부위원장이 함께 했다. 원대연 박사는 역사자료 발굴과 연구에 매진하고 종갑 사무총장은 고려사, 삼국유사 등 관련 서적을 집중 탐독하며 새로운 선조의 역사적 근거를 찾고 해결하는데 열성을 다하여 통합 분위기 조성에 최선을 다해 보좌해왔다.

  • 이러한 노력에 때맞춰 원성백계 원상필 사무총장(으뜸회, 원일회)이 중국사업을 국내로 돌리면서 이 문제에 적극 동참하게 된다. 20여 년 전 원상필 종친이 불과 38세의 젊은 나이임에도 으뜸회에 참여하면서 원회장이 수시로 통합과제가 원성백계 때문에 계속 무산된 점과 원균장군 명예 회복을 강조함에 따라 이에 공감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게 된 것이다.
  • 2023년 원대연 회장의 권유로 노쇄화하는 으뜸회의 활성화와 통합 등의 과제에 관심을 갖는 60대 중심(원성백계 다수)의 친목모임인 원일회(회장 원제철 한국물류협회장)가 결성되고 으뜸회 가족으로 들어오게 된다. 결국 원일회 젊은 세대가 닫혔던 마음을 열고 적극 참여하면 그들이 향후 으뜸회를 이끄는 주역이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통합의 큰 뜻에 적극 공감하며 원일회 모임의 활성화를 위해 분위기를 선도해주고 계신 원제철 회장(원성백계) 과 원상필 사무총장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나. 원성백계 원선재 회장의 깜짝 출현

  • 2021년 11월 원희룡 대통령후보시절 원주 시중공 시조 설단 고유제와 운곡 선조님 참배 시 3계 종친들이 계파를 초월하여 대거 참석, 원가(元家)가 “하나”임을 보여주는 첫 시발점이 되었다.
  • 원성백계의 차기 대종회장 내정자로 자신을 소개한 원선재 회장께서 “우리 통합합시다”를 깜짝 제안하셨고 반산반의하면서도 통합을 학수고대해왔던 터라 원 회장의 제안으로 오찬 장소에서 원승규, 원선재, 원대연 등 3 계파 회장이 식사 중 종친들 앞에서 손을 잡고 깜짝 통합선언을 하였다. 과거 일부 원로 어른들의 집요한 반대가 있었지만 새로운 시각을 가진 다수의 종친들은 시대에 맞는 방향으로 통합 의지를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그동안의 물밑작업이 조금씩 스며든 것으로 해석되었다.
  • 그럼에도 원성백계 내부 및 타 계파 일부 종친들은 여전히 회의적인 반응이었기에 과연 선재 회장의 약속이 이행될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였고 운곡계의 원승규 회장님과 함께 원성백계의 동정을 계속 지켜본 바, 결국 원선재 회장께서 물러나시면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였으나 통합의 끈을 당기게 하는 작은 불씨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본인의 뜻을 직접 수행치 못하였으나 큰 뜻으로 통합을 선도해주신 원선재 회장님의 크신 용기에 찬사와 감사를 보낸다.
  1. 통합추진 본격 돌입

가. 으뜸회 활성화 그리고 통합을 향한 결정적 전환점

  • 2023년 원제철 회장과 원상필 사무총장의 주도로 구성된 원성백계 중심의 원일회가 으뜸회의 새로운 가족으로 참여함으로 으뜸회가 활기를 되찾게 되고 수차례의 모임을 통해 통합과 원균 장군 명예회복을 한가족의 마음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 원대연 회장은 이 두 과제를 적극적으로 추친하기 위해 원상필 종친을 적임자로 판단, 본격적인 추친을 위해 으뜸회의 신임 사무총장으로 위촉했다.
  • 그 뒤 2차례의 원로, 중견 으뜸회원 만찬과 원균장군 특강(백승종교수)을 통해 통합분위 기 Mood up

원철희, 원경희, 원대연 회장, 원유철 의원 등 으뜸회 원로들과 원인철 전 합참의장, 원제철 회장 등 원일회 회원 30여 명 참석

  • 원성백계만 동의하면 모든 게 풀린다는 대전제로 적극 협의

- 원성백계 대종회 원종관 회장, 원용호 회장(삼사좌윤공파 종중), 원상필 사무총장 세 분의 적극적인 통합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적극적인 참여가 결정적 계기

- 시중공 중앙종친회 회의실 방문과 별도의 식사 기회를 통해 수차례 협의

(시중공계 원대연 회장, 원종갑 사무총장, 원대연 박사)

쟁점 : 원성백계는 운곡계와 시중공계가 시조로 인정하는 원경(元鏡)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 단, 불확실한 상고사를 고집하지는 않겠다. 설화적인 요소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으로 전환

  • “3 계파가 각자의 시조로 모시는 한 결코 하나의 원주원씨가 될 수 없다. 시조로 한분이 정해질 때 비로소 하나가 된다.” “현재까지 모시는 3계의 시조를 중시조로 하고 중국에서 도래한 것은 분명해 보이니 한분을 시조로 답을 찾자.”는 원대연 회장의 원칙적인 주장에 공감하고 답을 찾다.
  • 원용호 회장 제안, 예 원훤(元咺, BC 628년 졸)

⁃ 사료의 한계점으로 완전한 고증은 불가하므로 설화적인 방법 외에는 없다.

⁃ 시중공계의 원종갑 사무총장도 공감하고 계속 연구 보완해 가기로 함.

  • 내부적으로 엄청난 반대 분위기를 설득하고 공감대를 앞장서 구축하고 큰 뜻으로 적극 해결에 동참해 주신 원종관 대종회장님, 그동안 집안의 종사문제 자료 탐구와 철저한 분석을 통해 해박하고 합리적인 대안 제시에 앞장서 주신 용호 회장님, 반대 입장에 선 분들을 만나 설득하고 공감대를 이끌어 주신 상필 총장 세 분은 물론 원훤 시조 제안을 기꺼이 수용하고 설득에 앞장서 주신 순만 위원장님, 운곡계의 승규 회장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나. 통합위원회 발족과 활동

  • 통합추진위원회 발족 : 애초 시중공계 중앙종친회(회장 대연)가 제안한 통합추진 구체방안에 대해 미묘한 이견차로 우여곡절 과정이 없지 않았으나 원승규 운곡계 대종회장님의 대안 제시(원순만 대부님을 위원장으로 위촉)로 드디어 위원회가 발족하게 됨.

2023. 11. 6(월) 첫 오찬 모임(원주시 모 식당)에서 통합추진위원회 발족

⁃ 참석 : 순만, 용은 대부, 3계파 승규, 종관, 대연 회장 및 3계 사무총장과 관계자

⁃ 3계파 중심의 위원회 구성(18명)

⁃ 최고 연장자이시고 종사 문제에 오랫동안 무한한 애정과 헌신으로 앞장서 오셨고 존경받는 시중공계 원순만 대부를 위원장, 종사연구에 열성을 다해 오신 용은 대부를 사무총장으로 그 외 3계파 회장과 사무총장 및 종사 관계자들을 위원으로 위촉

  • 1차 통합추진위원회 회의 : 원주 운곡회관, 2024. 1. 22.(월)

어렵고 미묘한 사안이므로 시간을 가지고 연구하자는 일부 의견도 있었으나 지금까지 경험했듯이 역사적인 자료가 불완전 상황에서 시간만 끌고 만족할만한 합의를 얻기는 불가능하다. 한분의 시조가 선결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원”이 될 수 있고 이를 출발점으로 여타 중요과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게 순서이다』라는 점과 통합 합의가 되면 만전을 기하기 위해 법적 효력이 있는 공증(公證)이 필요하다는 원회장의 제안에 의견 일치를 보게됨.

  • 2차 통합추진위원회 회의 : 원주, 2024. 3. 26.(화)
  • 3계의 각종 행사에 적극 참석, 통합 Mood up!

⁃ 통합 으뜸회를 통한 분위기 조성에 이어 최근 3계의 각종 주요 행사에 계파를 초월, 적극 참여함으로써 “하나”임을 Boom up!

⁃ 1차 2021년 원희룡 대통령 후보의 시조 단소 참배, 원희룡 후보 선거 지원(인천) 대거 참여

⁃ 운곡제

⁃ 원가계 성지 준공식과 통합선언 : 용호 회장의 제안으로 순만 위원장님과 참여 종친, “통합만세”로 분위기 확산

⁃ 원균 장군 묘역 주변, 원문(元門) 단합대회

230여명 운집 (순만 위원장, 대연 회장, 제철회장, 유철 전 의원, 인철 전 합참의장, 우현 교수, 백승종 교수 등) 원균 장군 묘역과 사당 참배, 통합 분위기 절정

⁃ 운곡 종친 원균장군 묘역 첫 참배

⁃ 원심창 의사 기념관 개관식 외 다수의 행사 참석

  • 3차 통합추진위원회 회의 : 2024. 5. 27.(월) 원성백계 대종회의실(천안)
  • 통합위원 전원 찬성으로 원훤(元喧)조를 시조로 하는 원주원씨 통합결의문에 서명, 역사적인 숙원과제 해결
  • 순만 위원장님의 회의주재로 원만한 합의 도출.
  • 수권(首卷)위원회 발족, 3계 통합족보의 수권서문 및 통일 항렬표 작성
  • 2024. 7. 15.(월) 4차 통합추진위원회의에서 3계 통합종친회 명칭을 결정하기로 함. (시중공계 중앙종친회 회의실, 서울)

다. 3계 통합종친회 발족과 통합과제 일원화(안)

  • 통합종친회 명칭과 통합종친회 설립이 확정되면 통합중앙종친회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대에 맞는 세부 운영방침을 정해 교류함은 물론 중점 과제를 하나씩 해결하고 국내외적으로 한집안 한 가족으로 활발한 친교를 통해 발전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결정적 계기가 만들어 질것으로 기대함.
  • 끝으로, 장문의 스토리를 쓰게 되어 죄송스러움이 많으나 그 과정이 길고도 지난한 여정이었던지라 간략하게 기술하기에는 함께하신 모든 분들의 애정과 노고가 무척이나 지대하여 결례를 무릅쓰고 기술하게 되었으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면 큰 보람으로 남겠습니다.

오늘의 이 모든 결과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가문의 화합과 무궁한 발전을 위해 무한한 애정과 헌신으로 역사적인 소명을 다해 통합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의 공덕입니다.

순만 통합위원장님, 용호 수석부위원장님, 용은 사무총장님, 승규 운곡회장님, 종관 원성백회장님과 통합위원님들 그리고 원일회 제철회장님, 오랫동안 통합을 염원해 오시면서 종사와 수권작업을 선도해주신 종훈 위원님과 수권편찬위원님들께 다시한번 무한한 찬사와 감사를 드린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한뜻으로 열성을 다해 저를 보필해주신 종갑, 상필, 종래 세분의 사무총장과 대연 박사께도 각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역사적인 소명(召命)의식으로 통합에 참여해주신 여러분들의 사랑에 넘치는 헌신은 종사(宗史)와 후대(後代)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선대로부터 이어온 통합의 유업을 완수하기 위해 자택을 시중공계중앙 종친회 사무실로 운영하실 만큼 열성을 바치셨던 저의 숙부 원종훈(元鐘勳), 원용석 종친회장님과 원흥균 교대학장님을 비롯한 3계 대표 종친어르신들, 비록 통합 직전 결실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이제 저희들이 이루게 된 통합의 기쁜 소식을 영전에 바치오니 이제부터라도 편안히 영면하소서!

“원가(元家)는 하나다!”

감사합니다.

2025.5.

시중공계 종앙종친회, 으뜸회장 원대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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