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消極的인 原城佰系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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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onjongsuk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2-15 16:56 조회2,68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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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消極的인 原城佰系 - 3
◯三系 統合 大同譜 編纂 決議했으나....
『原州元氏 中央宗親會第四次 總會....四系가 統合된 大同譜를 編纂할 것을 決議하였으며 ......族譜編纂委員會를 編成하고 1983년 11월 1일에 서울 中區 奬忠洞 2街 45의 2에 原州元氏譜所事務室을 開設하고 三系가 한 組織下에서 合譜를 前提한 事業을 開始하였다.
그러나 三系合譜가 如意치 못하여 原城佰系에서 반대가 있어 獨自的인 族譜를 編纂게 되자 結局 三系가 따로따로 族譜를 編纂하게 되고 끝내 合譜는 그 結實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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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州元氏侍中公系 編, ≪原州元氏族譜 九之一≫, 1985. pp.148-149.
▣삼계(三系) 합보(合譜) 무산(無産)
『1985년 음력 10월 1일 익흥군(益興君) 시사(時祀)에 약 100여명의 참사(參祀) 종원(宗員)들이 분분(紛紛)하였으므로 11월 二28일에 시중공계(侍中公系) 종회(宗會)를 소집(召集)하여 의견(意見)을 토의(討議)한 결과(結果) 삼계(三系)가 합보(合譜)하는 데는 찬성(贊成)하나 이계(二系)만이 합보(合譜)하는 것은 의의(意義)가 없는 것이니 시중공계(侍中公系) 단독(單獨)으로 족보(族譜)를 편찬(編纂)할 것을 결의(決意)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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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州元氏侍中公系 編, ≪을축보(乙丑譜)-1985≫, 1권 p.182-183
※元鍾石 著. ≪原州元氏≫, 2015. p.233.
▣<元鏡>을 始祖로 하는 三系 合譜 燒却 處分
『족보(族譜)시작(始作)은 계해년(癸亥年) 초(初)부터 만삼년(滿三年)이 경과(經過)된 원인(原因)은 삼파합보문제(三派合譜問題)로 수차례(數次例) 논의(論議)한 결과(結果) 원주원씨(原州元氏) 시조(始祖) 경자(鏡字)로 모시고자 삼파(三派)결의(決議)로 착정하시고 거액(巨額)을 들여 족보(族譜)를 복사(複寫)한 것을 원성백계(原城伯系) 이의(異議) 불평(不評)에 족보(族譜)를 불태워 없애고 합보(合譜)도 아니 되고 전보(前譜)대로 환원(還元)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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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容德 著.≪元氏得姓開祖德業慶流後昆一源誌≫. p.36.
※元鍾石 著. ≪原州元氏≫, 2015. p.233.
<뒷이야기>
原陵君 墓域 淨化事業을 할 때도 뒷짐만지고 있었고, 三系合譜를 만들 때도 인쇄를 마칠 때까지 뒷짐만 지고 있었다고 하니 원성백계는 너무나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 같습니다.
<원경>을 시조로 인정할 수 없다면 족보를 인쇄하기 전에 그 사실을 바로 이야기하고 다시 협의해야 할 것인데, 막대한 재정적 손실도 문제이지만 그 간의 노력이 모두 허무하게 무산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무책임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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