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州 元氏 兩元 三系 系譜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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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onjongsuk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7-27 15:40 조회1,72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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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解說)>
○원씨(元氏)의 성조(姓祖)-원훤(元咺)
『원씨(元氏)는 위(衛)나라 종실 <원훤(元咺)>대부의 후손이다. 그 선조가 <원(元)>에서 살았기 때문에 성(姓)을 <원(元)>이라 한 것이다.』
※公子著,≪春秋≫,第五卷,BC 629.
그 때에 주(周)나라 양왕(襄王) 천자(天子)가 모든 백성에게 성씨(姓氏)를 정하여 공포하였는데 그 현의 이름을 따서 원훤(元咺)이라는 성명을 내렸다고 한다.
※≪文獻備考≫ 第五0卷.
○원주원씨(原州元氏)의 양원(兩元)-토원(土元)과 당원(唐元)
一九八四년도 운곡계(耘谷系) 족보 ≪甲子譜≫표지에 ≪原州元氏唐元平章事公系世譜≫라고 기록하여 처음으로 양원(兩元)이란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원성백계(原城伯系)의 동래설(東來說)에 따르면 분서갱유(焚書坑儒)사건 때에 진(秦)나라에서 동래(東來)한 원씨(元氏)를 진한원씨(辰韓元氏)이라 하고 속칭(俗稱) 토원(土元)이라 한다.양원(兩元)이란 토원(土元)과 당원(唐元)을 말한다.
○토원(土元)-진(秦)나라에서 동래(東來)
진시황(秦始皇)이 처음으로 천하를 통일하고 중앙집권(中央集權)을 강화(强化)하기 위하여 「분서갱유(焚書坑儒)-BC 213年」사건(事件)을 일으켰으니 이를 피하여 진나라 일부 선비들이 도망하여 진한(辰韓)으로 동래(東來)하였다고 한다.
『삼한기(三韓記)에 가로되 진(秦)나라 사람이 한(韓)나라로 들어오니 한(韓)나라에서 동쪽 지경(地境)을 나누어주었고,여기가 진한(辰韓)이니,十二國을 통치하였고,원주(原州)도 여기에 속한 골이다.원씨(元氏) 또한 이 시기에 난리(亂離)를 피하여 동래(東來)하여 왔다고 한다.』
※耘谷系 族譜 ≪丁亥譜-1767≫
○당원(唐元)-당(唐)나라에서 동래(東來)
고구려(高句麗) 보장왕(寶藏王) 二年(西紀 六四三) 三월에 개소문(蓋蘇文)이 왕(王)에게 고하고 말하기를『삼교(三敎)를 비교하건데 솥발과 같은 것이며 그 중에 한가지라도 없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유교와 불교와 아우러 성하고 있으나 유독 도교(道敎)가 성하지 못하고 있사오니 청컨테 당(唐)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도교(道敎)를 구하여 백성을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왕이 과연 그게 옳다 하면서 당(唐)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청하니 태종이 도사 숙달(叔達) 등 八명의 도사(道士)를 보냈으며--.
※≪三國遺事-三卷≫ 西紀一三八九年 晋覺國尊 一然 씀
○당원(唐元)의 시조(始祖)-元鏡의 東來說 根據
元鏡은 原州元氏 姓祖 元咺의 四一代孫으로만 알려져 있지, 先祖라든가 누구의 후손이라는 것은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唐나라 사람으로 八學士의 한사람으로 東來했다는 것만 傳說로 알려져 있다.
※≪三國遺事≫의 記錄
『高句麗 寶藏王 二年(西紀643年) 三月에 淵蓋蘇文이 왕에게 고하고 말하기를 「...請컨대 唐나라에 使臣을 파견하여 道敎를 구하여 백성들을 가르치게 하소서」하니 王이 과연 그게 옳다 하면서 唐나라에 보내서 청하니 太宗이 道士 叔達 등 八명의 道士를 보냈으며...』
※普覺國尊 一然 씀. ≪三國遺事≫, 제3권, 서기1389년.
叔達이란 吉鏡의 號이다. 元鏡이란 이름은 登場하지 않는다.
耘谷系는 이를 근거로 시조로 내세우고 있다.
※耘谷系의 ≪丙午譜-1966≫의 기록
元鏡-『高麗 佐命功臣 金紫光祿大夫 門下侍中 平章事...○中原 弘農人 高麗 光宗 十一年以太學士奉使 東來時 池辛洪郭張李河 八鏡 同來』
※元鍾石 著, ≪原州元氏-2015≫, pp.76-77.
八學士 名單이 처음으로 登場하는데, 侍中公系 ≪乙丑譜-1985≫ 一卷 pp.188-191.의 기록(元洪辛郭池吉房魏)과는 다르다. 耘谷系 족보 간에도 서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侍中公系 ≪老僧이 전한 家乘≫의 기록
元鏡-『高麗 仁宗 戊午 及第 金紫光祿大夫 門下侍中 平章事』
※元世東 著, ≪原州元氏侍中公派始祖考證-2002≫, p.20.
金紫光祿大夫門下侍中平章事는 唐나라 벼슬이니 元鏡은 唐나라에서 東來한 것을 類推할 수 있다.
侍中公系는 이를 근거로 하여 삼계 합보를 추진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侍中公系는 唐元의 始祖 元鏡의 長孫 侍中公 希跡의 後裔
운곡계(耘谷系) 족보(族譜)에 보면 시조 장손(長孫) 희적(希跡)의 난(欄)에는 벼슬은 시중(侍中)이라고만 기록해 두었고 후손에 대한 기록은 없다.운곡계(耘谷系)는 장손(長孫) 희적(希跡)의 후손이 아니고 차손(次孫) 희영(希英)의 후손이라는 기록이다.
시중공계(侍中公系) 가승(家乘)에 보면 원경(元鏡)의 장손(長孫)인 시중공(侍中公) 희적(希跡)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다.
문하시중(門下侍中) 평장사(平章事) 원경(元鏡)의 장손(長孫) 희적(希跡)은 시중(侍中) 벼슬에 올랐으니 <시중공(侍中公) 집안>, <시중공댁>이라고 불렀을 것이라고 유추(類推)하게 된다.
※侍中公系『老僧이 전한 ≪家乘≫』의 記錄을 根據로 함.
※原城伯系 ≪甲午譜-1774≫의 記錄을 根據로 함.
※耘谷系 ≪舊譜≫의 記錄을 根據로 함.
※耘谷系 ≪丙午譜-1966≫의 기록을 근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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